기본

피곤하다

사춘기 2006. 6. 25. 19:18

시동생 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스물다섯 살 꽃다운 나이에 혼인을 했다.

부모님도 없이

키워 준 할머니도 없이 씩씩하게 결혼식을 치렀다.

 

텅 빈 앞 자리가 질녀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부모님 자리에는 숙부와 고모가 앉아 있다.

몇 줄 안되는 신부측 하객석

웃으며 결혼식을 치르는 질녀를 보니 울컥하는 뭐가 있다.

 

사귀다 보니 어찌하여 임신을 하게 되었고

병원에 가자는 어른들을 뿌리치는 남자의 고집을 꺽지 못해

이 혼인은 서둘러 치르게 됐다.

둘 다 나이가 어리니 병원에 가자는 어른들의 권고를

신랑인 질녀서가 극구 반대하여 결혼식을 서두른 것이다.

 

외국에 있는 시동생

그 시동생과 사는지 안 사는지 모르는 동서

그 두 사람은 결혼식에 없었고

보장된 직장을 버리고 남자를 택한  손녀가 미워서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시어머니

 

난 솔직히 시어머니의 반대를 이해하기 힘들다.

기분 좋은 혼사는 아니지만 결혼식까지 가지 않는 반대는

내가 친 엄마가 아니어서 이해하기 힘든 걸까

시어머니는 남자를 따라가는 손녀도 싫고

얼른 치우자는 듯이 혼사를 서두르는 아들 딸들도 싫으시다는 것이다.

 

처녀가 임신을 했는데

아무리 지금이 개방된 사회라 해도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처녀의 임신은 총각은 임신보다 약자다.

내 아들이 잘못했습니다 하고 비는 남자의 부모 앞에서

시어머니는 적당한 합의로 체면치레를 하면 되는 것이다.

아쉽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일은 이미 벌어져 밥이 되어버렸는데

 

결혼식이 끝나고 시어머니께 모두 들렀다.

한 마디씩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말로도 시어머니를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

 

항상 당신을 제일 좋아해야 하는 시어머니

딸처럼 키운 손녀가 할머니인 당신보다 남자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어쩌면 그 사실이 더 견디기 힘드셨을 거다.

아들이 며느리를 당신보다 더 좋아하는 듯 싶으면 새초롬해지는 시어머니

손녀도 예외가 될 수는 없는 모양이다.

난 그런 시어머니는 위로해 드리고 싶지 않다.

 

시어머니의 괘씸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정도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의 오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은 선택은

손녀에게도 당신에게도 커다란 상처와 흉터로 남을 것이다.

질녀가 사는 데 있어서 악영향도 끼칠 것이다.

 

무엇이 진정으로 손녀를 위하는 것이었을까

시어머니는 괘씸함에 앞서 생각해 보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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