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을 감수하는 출근길.
아파트 단지 쪽문을 나서자마자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남자동창이다,
난 중학교 무시험1회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이지만 대통령 아들과 같은 연도에 국민학교를 입학한 덕이라고 들 했었다.
그래선지 시골 중학교 치고는 동창들의 재도시 진출과 사회적인 그런저런 성공담이 많았다.
서울에 빌딩이 몇 개 있다는 부자도 있고
행정고시 합격자도 있고
그런저런 공무원들도 선생님들도 좀 있고
그런저런 회사원들도 있고
등등
시골 중학교 치고는 동창들의 이력들이 좀 있다.
그 중 한 사람이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대단하다고 개천의 용들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동창이다.
그 동창에 대한 대표적인 기억은 종아리를 겨우 가린다고 할 정도로 짧은 교복바지다.
남자답지 않게 가늘고 예뻤던 발목은 그래서 더 추워보였다.
졸업 후 서울에서 만나게 되었다.
나중에 다른 동창들에게서 들은 인생사는 눈물겨웠다.
SKY대학을 갈 수 있는 실력임에도 가정형편으로 도립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상업고등학교 성적 우수자는 대부분 은행에 취직했다.
동창 역시 국책은행에 자리잡고 서울로 올라와 또 자리 잡았다.
자신이 입사했던 은행이 흡수합병되었음에도 살아남아 지점장을 끝으로 은퇴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도 벗어났다고 한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대표적인 서민동네에서 살고 있다.
알바 다닌다고 짧막하게 근황을 설명하곤 나중에 연락하마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동창은 내가 자신을 존경한다는 것을 안다.
남편 역시 동창의 성실함과 후덕함을 칭찬했다.
비록 60세 정년을 채우는 직장생활은 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계약직으로 직장을 다니는 동창이 자랑스럽다.
얼굴만 쬐끔 더 썼으면 하느님의 성공적인 작품이 되었을 거라는 내 말에
남편은 남자답게 잘 생겼는데 뭘 그래. 하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언제 술 한잔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