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재미없는 삶

사춘기 2007. 7. 31. 23:29

해도 너무 한다고 생각하지 않냐.

 

남편이 내게 한 말이다.

아침에 남편이 남겨 놓고 간 설거지를

퇴근 한 내가 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남편이 돌아왔다고 해서 한 말이다.

 

그저 종일 책만 붙들고 읽고

책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니 책하고 살아라

무슨 저주도 아니고 남편이 저주처럼 내게 퍼붓는 말이다.

 

내가 종일 보는 책은 로맨스소설이다.

내가 로맨스소설을 보는 이유는 딱 하나

무조건 해피엔딩이어서다.

어떤 로맨스소설이건 끝나는 건 행복한 결말이다.

 

로맨스소설에는

맺힘도 없고

오기도 없고

저주도 없고

오직 화해와 사랑과 행복만 존재한다.

그렇게 끝이 난다.

그렇게 잘 살았다고 끝이 난다.

그래서 난 그런 소설만 읽는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왜 그런 소설을 읽는지

알려 하지도 않고  

무슨 소설을 읽는지 알려고도 않는다.

 

사는 게 재미없다.

어쩌다가 재미없는 삶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되돌리려 해도 실마리를 잡지 못하겠다.

남편에게서도 아들에게서도 내게서도

재미를 찾지 못하겠다.

시댁은 아예 절망이다.

 

모든 것에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무관심하려 노력한다.

오는 전화만 받는다.

내가 전화하지 않는다.

찾아오는 사람만 반가이 맞이한다.

내가 찾아가지 않는다.

어느새 나는 단단한 껍질을 이고 사는 달팽이가 되어버렸다.

 

어떤 때는 집에 남편이 있어도 아들이 있어도

깜박 잊어버리고 나 혼자 있는 줄 안다.

진짜 깜박 잊어버린다.

어떻게 식구가 집에 있는데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수 있을까.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나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 있다.

사는 게 참 재미없다.

왜 재미없냐고 물으면 모른다.

모르니까 모른다.

 

책 속에 나를 잊어버리지 않으면

어쩌면 난 나를 정말로 잊어버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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