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그냥 지나가야 한다
말 걸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모든 필연을
우연으로 가장 해야 한다
누군가 지나간 것 같지만
누구였던가 관심두지 않도록
슬쩍 지나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죽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몇 번을 죽을 수 있지만
처절하거나 장엄하지 않게
삶에 미련 두지 말고
되도록 짧게 죽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죽음으로
살아남은 자의 생이 더욱
빛나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이란 배당받는 것이다
주어진 생에 대한 열정과 저주,
모든 의심과 질문들을 반납하고
익명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세상을 한번, 휙..
사소하게 지나가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끝끝내
우리는 배경으로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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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 가장 밝아야 할 시간에 장마철처럼 어둡다.
내가 어두우면 공간도 어두워 보인다.
오늘은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로 어둡다.
올 봄엔 웬 비가 이리도 잦은가
비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 화가 무지 난다.
나랑 싸우자고 말하는 거냐고 물었다.
누가 싸우쟀냐고 말한다.
이후로 내 입은 닫혔다.
토요휴무도 챙기지 못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나왔는데
성한 사람들이 아픈 나에게 자신들의 자리를 때우라고 한다.
화가 기하급수적으로 쌓인다.
이럴 땐 확 싸워버려야 풀리는데 누구랑 싸울까
상대를 찾다가 어느새 쌈닭이 되어버린 나를 발견한다.
싸움이라고는 보는 것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내가
어느새 싸움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변하게 했을까
이제는 싸우면 지지 않을 것 같다.
누구와 싸워도 이길 것 같다.
그런데 싸울 사람이 없다.
나는 손이 커서 주먹 쥐면 뭐든지 깰 수 있는데
큰 주먹으로 싸워야 하나
작은 입으로 싸워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