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폐백 받던 날

사춘기 2005. 4. 25. 16:54
 

처음 폐백을 받았다.

혼자 받는 폐백은 아니지만 처음이고 아직은 이라는 생각에서

어색하기 짝이 없는 자리였다.

동갑내기 시동생의 폐백이다.


시동생은 내가 알기만도 세 여자를 보내고 네 번째 여자와 식을 올렸다.

자식도 낳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겠다던 시동생

시동생 말대로 결혼했다. 안할 줄(안하려고 했다) 알았는데 했다.

동서는 살다가 올리는 식임에도 긴장하여 많이 빠졌다.


시댁 식구들은 모두 홀가분한 표정들로 여유가 있어 보였다.

결혼이 가지는 의미가 참으로 큰가 보다.

서양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결혼에 목말라 하는 장면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어느새 우리도 결혼이 귀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식구들이 시숙의 가게에 모였다.

가족 뒤풀이인 셈이다.

시숙은 돌아가신 동서가 많이 생각나는지

평소 시숙이 부르던 노래와는 다른 노래들을 불러 숙연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시어머니 친구 분이 남편에게 잔소리를 많이 했다.

시어머니께 둘째 며느리를 아주 잘 봤다고 자주 말씀하신다고 한다.


들뜬 시댁 식구들과는 달리 나는 가라앉는다.

사회적인 사시의 대상인 동서

과정이야 어찌되었든지 총각과 결혼했다.

그것도 결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던 남자와 결혼했다.

왕자는 아니지만 신데렐라라고 해야 하나

내 사고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선뜻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돌아가신 동서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섰고

하지 않겠다던 결혼도 했으니

시어머니께서는 이제야 아들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심각함을 모르는 아들 하나가 있으니...

내가 그 아들 곁에서 폐백을 받았다.

절대로 받고 싶지 않은 폐백을 받았다.

 

그러고 보면 난 참 영화같은 집안에 시집온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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