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부고

사춘기 2004. 9. 9. 10:20

여기에 우리 머물며


                  -이기철-


풀꽃만큼 제 하루를 사랑하는 것은 없다

얼 만큼 그리움에 목말랐으면

한 번 부를 때마다 한 송이 꽃이 필까

한 송이 꽃이 피어 들판의 주인이 될까


어디에 닿아도 푸른 물이 드는 나무의 생애처럼

아무리 쌓아 올려도 무겁지 않은 불덩이인 사랑


안 보이는 나라에도 사람이 살고

안 들리는 곳에서도 새가 운다고

아직 노래가 되지 않은 마음들이 살을 깁지만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느냐고

보석이 된 상처들은 근심의 거미줄을 깔고 앉아 노래한다

왜 흐르느냐고 물으면 강물은 대답하지 않고

산은 침묵의 흰 새를 들 쪽으로 날려 보낸다


어떤 노여움도 어떤 아픔도

마침내 생의 향기가 되는

근심과 고통 사이

여기에 우리 머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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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여 사무실에 들어서니 직원이 내 도장함을 만진다.

순직을 알리는 공지사항을 직원이 들고

똡니다. 한다.


요즘 들어 자주 접하는 부고다.

한달사이 순직이 두 번

동기 남편이 죽고

그만 둔 동기가 죽었다.

부모님들이야 우리나이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부고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다)

젊은이들의 부고는 영 마음이 아픈 걸 지나

나 자신을 추스르기 힘들다.


지난 번 직원은 서른다섯

오늘 본 직원도 서른 둘

둘 다 어린 자녀가 있고 젊은 부인이 있다.

그래봐야 모금한 돈과 약간의 부의금뿐인 죽음

온전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약간의 돈 몇 푼 보태주는 것


아직 죽음과 함께 할 나이는 아니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지금은 죽음을 이야기 하며 살 나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혼인과 출생이라는 말보다

죽음이라는 말이 더 진하게 들린다.


차를 타고 지나다가 언덕위의 묘를 보면

좌청룡 우백호를 먼저 보게 되는 걸 보면

나도 이제 늙었는지 늙고 있는지

둘 중 하난가 봐


엊그제 시험보고 올라오는 차 안에서

몇 살 어린 직원이 한 말이다.

이제는 죽음이 편하기를 바라고

산 사람에게 고통이 아니기를 바란다.


죽음이 호상이든지 아니든지를 떠나

산 사람은 그 죽음을 아파하며 힘들어한다.

가장 힘든 죽음은 배우자의 죽음이 아닐까.

가슴이 아프기로 한다면 자식이겠지만

하늘이 무너지기로 한다면 배우자일 것이다.


서른두 살 남자의 아내는

혼인한지 1년이라는 남은 여자는

하늘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느꼈을 것이다.


태어나면 살만큼 살다가 가도록

그래서 산 사람이 아플 일이 없도록

하느님이 법을 바꾸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