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여기에 우리 머물며
-이기철-
풀꽃만큼 제 하루를 사랑하는 것은 없다
얼 만큼 그리움에 목말랐으면
한 번 부를 때마다 한 송이 꽃이 필까
한 송이 꽃이 피어 들판의 주인이 될까
어디에 닿아도 푸른 물이 드는 나무의 생애처럼
아무리 쌓아 올려도 무겁지 않은 불덩이인 사랑
안 보이는 나라에도 사람이 살고
안 들리는 곳에서도 새가 운다고
아직 노래가 되지 않은 마음들이 살을 깁지만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느냐고
보석이 된 상처들은 근심의 거미줄을 깔고 앉아 노래한다
왜 흐르느냐고 물으면 강물은 대답하지 않고
산은 침묵의 흰 새를 들 쪽으로 날려 보낸다
어떤 노여움도 어떤 아픔도
마침내 생의 향기가 되는
근심과 고통 사이
여기에 우리 머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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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여 사무실에 들어서니 직원이 내 도장함을 만진다.
순직을 알리는 공지사항을 직원이 들고
똡니다. 한다.
요즘 들어 자주 접하는 부고다.
한달사이 순직이 두 번
동기 남편이 죽고
그만 둔 동기가 죽었다.
부모님들이야 우리나이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부고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다)
젊은이들의 부고는 영 마음이 아픈 걸 지나
나 자신을 추스르기 힘들다.
지난 번 직원은 서른다섯
오늘 본 직원도 서른 둘
둘 다 어린 자녀가 있고 젊은 부인이 있다.
그래봐야 모금한 돈과 약간의 부의금뿐인 죽음
온전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약간의 돈 몇 푼 보태주는 것
아직 죽음과 함께 할 나이는 아니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지금은 죽음을 이야기 하며 살 나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혼인과 출생이라는 말보다
죽음이라는 말이 더 진하게 들린다.
차를 타고 지나다가 언덕위의 묘를 보면
좌청룡 우백호를 먼저 보게 되는 걸 보면
나도 이제 늙었는지 늙고 있는지
둘 중 하난가 봐
엊그제 시험보고 올라오는 차 안에서
몇 살 어린 직원이 한 말이다.
이제는 죽음이 편하기를 바라고
산 사람에게 고통이 아니기를 바란다.
죽음이 호상이든지 아니든지를 떠나
산 사람은 그 죽음을 아파하며 힘들어한다.
가장 힘든 죽음은 배우자의 죽음이 아닐까.
가슴이 아프기로 한다면 자식이겠지만
하늘이 무너지기로 한다면 배우자일 것이다.
서른두 살 남자의 아내는
혼인한지 1년이라는 남은 여자는
하늘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느꼈을 것이다.
태어나면 살만큼 살다가 가도록
그래서 산 사람이 아플 일이 없도록
하느님이 법을 바꾸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