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쓸데 없는 생각들 4

사춘기 2006. 11. 7. 17:35

축령산에 다녀왔다.

남산같은 산행을 한다고 지레짐작으로 등산화만 신고 따라 나섰다.

나를 생각하여 선택한 산이라고 한다.

나만 아니라면 참으로 부담없이 등산하기 좋은 산이다.

등산로도

산의 높이도

무엇보다 때묻지 않고 원시적인 자연의 모습도 아닌 자연스런 산의 모습이 좋다.

 

남편은 등산화 끈을 매는 나를 빈정거린다.

등산화는 언제 샀니.

아프다면서 웬 등산이냐는 뜻이다.

살만하니까 등산을 따라 나섰지 뜻이다.

남편의 그런 말투는 여전히 적응하기 힘들다.

 

남편은 곁에 없지만 나는 들뜬 마음으로 등산행에 합류했다.

산은 조용했다.

조신한 아낙네처럼 뭔가를 품은 듯 조용했다.

열정을 감춘 화산같은 모습이다.

 

정상을 가는 도중 능선에서 바라 본 산은 가슴을 탁 틔게 만들었다.

골짜기에 깔린 안개도 아닌 스모그도 아닌 무엇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흐릿하니 모호한 안개가 몸을 떨게 한다.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탓일까.

다가갈 수 없는 연인들을 안개가 느끼게 한다.

 

점심을 준비하지 않은 산행은 배고픔으로 인한 고행길이었다.

다리가 풀려 제대로 걷지 못하지만 나 때문에 산행이 끊길까봐

이를 악물고 따라 붙는다.

남정네에서 손을 잡아달라고 서슴없이 내민다.

뒤에서 밀어달라고 강요한다.

둘이서 온 산행은 아니지만 즐거운 마음은 나이를 잊게할 만큼 들뜨게 한다.

 

이런 감정은 무엇일까.

이십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들뜬 기분을 만끽하고 싶은데 상대가 없다.

남편은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에서 못 잔 잠을 자고 있다.

같이 온 사람들과 친분은 충분하게 가깝지만

이 들뜬 마음을 채워줄 사람들은 아니다.

 

가을을 타는 걸까.

가뭄으로 단풍이 없다는데도 축령산은 단풍이 곱다.

수북하게 쌓인 나뭇잎들 사이로 발자국 하나 없다.

쌓인 나뭇잎 위를 뒹굴고 싶다.

음미하듯 조용하게 걷고 싶다.

모호한 안개 싸여 신비한 여인의 모습으로 떠다니고 싶다.

능선을 걸으며 내내 유혹에 빠져드는 마음을 다잡느라 애썼다.

 

가르마에는 흰머리가 하얗게 서리로 앉았다.

이런 모습으로 들떠 헤매는 모습이라니

산을 오르는 내내

낙엽의 유혹을 떨치느라

남편을 아쉬워 하느라 숨을 몰아쉬었다.

 

혼자 등산간다고 삐죽이며 빈정거리던 남편이 내내 아쉬웠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갈증은 풀기 힘들고 강렬하다.

로맨스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닭살 돋는 표현을 많이 접한다.

갈증은 점점 더해가고 이제는 소설을 접어야 할까 보다.

 

접으려 하는 마음에도 책방의 책을 뒤진다.

오늘도 두 권 들고 와서 읽는다.

텅 빈 가슴을 채우려 하지만 더 비게 한다.

대체 언제까지 빈 곳만 붙들고 있으려는지 한심하다.

 

쌓인 나뭇잎들이 눈에서 아른거린다.

발목이 아파 걷지도 못하고

허리가 아파 누워있으면서도

모호한 안개에 마음이 아프고 쌓인 나뭇잎에 가슴이 저린다.

 

축령산은 연인들을 위한 산이고

연인이 아니어도 연인이고픈 유혹을 지닌 산이다.

매점 하나 없는 고즈넉한 자연의 모습이

화산을 품은듯한 붉은 입술로 화인을 찍듯 달뜨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