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는가
꽃밭에 서면
-이해인-
꽃밭에 서면
큰 소리로
꽈리를 불고 싶다
피리를 불 듯이
순결한 마음으로
꽈리속의 잘디 잔
씨알처럼
내 가슴에 가득 찬
근심 걱정
후련히 쏟아 내며
꽈리를 불고 싶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동그란 마음으로
꽃밭에 서면
저녁노을 바라보며
지는 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고 싶다.
남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나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받고 싶다.
꽃들의 죄 없는
웃음소리
붉게 타오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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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한지도 8개월이 다되어간다.
힘들다.
남들은 허리가 아프다 살이 찐다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대신 차가운 것이 몹시 싫어졌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직접 내 몸에 바람이 닿으면
소름이 돋고 몸이 굳는다.
퇴행성관절처럼 차가움에 몸이 굳는다.
또 마냥 늘어진다.
조금만 움직여도 늘어지고 힘이 없으며 붓는다.
이것도 움직이는 거라고
이러려면 죽어야지 할 정도로 굼벵이 같은 움직임에도
늘어지고 붓는다.
오늘 아침에는 슬그머니 후회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괜히 했나
죽을병도 아니었는데
증상들이 나타나고는 있었지만 못 견딜 정도도 아니었는데
병든 자궁이지만 가지고 있었어야 했는가 싶다.
차가운 것을 본능적이라 할 정도로 몸이 반응할 때면
그래서 몸 전체가 퇴행하여 갑자기 미이라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겁이 난다.
무협지에서도 단전은 생명이라 하지 않았던가.
내공을 쌓을 수도 가질 수 없는 몸이라
내 손으로 단전을 버린 셈이다.
후회하다가 갑자기 이라크에서 죽은 남자가 생각났다.
사라진 자궁과 그 남자가 무슨 연관이 있다고
나는 지금 후회하는가
사라진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