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청출어람

사춘기 2006. 7. 24. 12:36

세상에 태어나 가장 기쁠 때가 언제냐는 물음이 있다면

아마 모르면 몰라도 이구동성으로 자식이 잘 되었을 때 가 아닐까 싶다.

잘 되었을 때에 해당되는 잘 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나 대충 추려본다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자식이 공부를 잘 해 흔히 말하는 일류학교에 좋은 성적으로 진학할 때

졸업하고 목에 힘을 주는 직장에 들어갈 때

분에 넘치는 배우자를 만나 혼인할 때

나보다 훨씬 뛰어나 자랑하고 싶을 때

무엇보다 큰 기쁨은 나보다 뛰어나 자식이 더 짙은 남색을 띨 때일 것 같다.

 

아들이 공부와는 영 인연이 없지 싶을 정도로 공부를 하지 않는다.

남편은 대학에 떨어지면 곧바로 군대에 보낸다고 난리다.

컴퓨터를 뺀다.

만화책을 찢어버린다 등등

남편의 처치는 극약처방에 해당되는 것들이지만

아들에게서 효과는 커녕 반응조차 전혀 없다.

 

빈손으로 시작하여 큰 부는 물려주지 못하지만

한다고만 한다면 유학까지도 생각하고 있는데

아들은 국외 유학은 커녕 국내 지방유학을 가야할 지경의 성적이다.

남편은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고 있고

한숨 쉬는 기색이 안보이는 나에게 태평이라고 구박이다.

 

요즘들어 청출어람이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내가 푸른색을 띠는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식이 나보다 나은 위치에 설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이나 기대를 할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스승의 기쁨이라는 것과 자식 키우는 기쁨이라는 것이

전혀 다르지 않은 같은 것임을 처절하다 할 정도로 느낀다.

 

아직 스물도 안 된 아들에게서 절망을 느낀다는 남편

난 절망을 느끼고 싶지 않다.

이제 스물도 안 된 아들이 무엇이 어떻게 될 줄 안단 말인가.

난 절망보다 희망을 찾아 기대하고 싶다.

아직은 어린데

 

군대에 보내겠다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잘못되기만 고대하는 것처럼 들려 기분이 몹시 나빴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군대에 보내겠다는 생각보다

대학에 어떻게든지 꼭 보내고 말 거라는 다짐을 했으면 좋겠다.

 

사람이 태어나 가장 기쁠 때는

후손이 나보다 잘 나 자랑하고 싶을 때다.

자식이든 제자든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