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무너진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너는 나와 다르다
탐욕의 수사학에 능한 거미여,
너는 어둡고 외진 곳에 그물을 치지만
나는 내 목구멍에 거미줄 치고 산다
너는 죽은 척 숨어서 먹이를 노리지만
나는 홀로 빈 방에 스스로 갇혀
사무치는 그리움만 파먹고 산다
달변의 항문으로 끈적끈적 갈겨 쓴
현란하고 음흉한 글줄, 다시 보면
틈 많고 내용 뻔한 밑씻개를 내걸고
너는 모기나 날파리를 유혹하지만
나는 외롭고 고된 여생을 풀어
순장될 허무의 집 한 칸 짓기 위해
필생의 무늬를 짜 허공에 건다
남이 보면 하찮고 내가 보면 지극한
그래서 거듭 말해두지만
나는 너와 다르다.
-임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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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어제 새벽에 비가 왔으면 늦잠을 푹 잘 수 있었는데
비와 나는 타임이 맞지 않았나보다.
산불캠페인에 이가 빠져 듬성듬성한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아침에 점호를 취한다.
이를 두고 공교롭다고 한다.
다 공적인 이유로 빠졌으니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사무실 옆 도로에 차가 질주할 때마다 물이 튀기는 소리가
너 어제 약 올랐지 하며 놀리는 것 같다.
산에 오르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사람에 치여 걷기 불편할 지경이었다.
이 근동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살고 있나
아니면 모두 이 산으로만 오는 걸까
지겹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적함을 즐기기 위해 오르는 산에서
사람에 치여 짜증만 날 것 같다.
산이 아무리 커도 그 많은 사람을 담기에는 작아보였다.
서울 주변 모든 산에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여기를 보면 저기를 알 수 있고
저기를 보면 거기도 알 수 있을 테니
모든 산에 사람이 나무보다 많을 거라는 생각이다.
산이 무너질 것만 같다.
산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제발 그만 좀 오거라. 나도 좀 쉬자
우리들이 산에 부지런히 다녀서 산에 길이 많아지면
나무나 풀이 자라지 못하고 길은 허물어진다.
우리 아들들은 나중에 어느 산으로 가야할까.
산이 산다워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바다로 갈까
바다가 바다다워지지 않으면 해저로 갈까
지금 산은 사람들 자주 오는 것을 좋아할까.
어쩌다 한 번 오는 것을 좋아할까
내가 좋다고 찾아간 산이 나로 인해 죽어간다면 기분이 좋을까
사람들이 산보다 많은 산은 통제를 했으면 좋겠다.
항상 가도 고즈넉하고 넉넉함을 즐길 수 있게
산의 비명보다 노래를 듣고 싶다.
꼭대기에 올라가지 않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