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생각에 젖어
만화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드라마를 본다.
왕자가 나오고 신데렐라가 나오고 애인도 등장한다.
신문기사에 한 면을 장식했던 내용들이어서 어쩌면 빤한 내용인줄 알면서도 본다.
어려서 꿈꿨던 왕자님과 공주님을 오래 오래 잘 살았다더라. 를 떠올리며
가끔 나에게 연정을 고백했던 남자들을 떠올릴 때가 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변했고 지금도 나처럼 가끔 나를 떠올리기도 할까 생각한다.
그 중 한 사람은 사랑에 대해 회의를 품게 하고 그 사람마저 미워하게 했다.
울면서 기다려 달라던 남자가 나중에 알고 보니 나에게 연정을 표하고
사내의 눈물로 여자의 마음을 아프게 해 놓고는 바로 혼인한 것이다.
받아주지 못해 그 눈물로 인해 나는 얼마나 안쓰러워했었는데.
또 한사람은 농사꾼이었는데 나를 만나기 위해 친구들 모임을 만들고
그 자리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지불했다.
그리고 편지와 방문이 이어졌다.
시골에서 과년한 처자의 집에 남자가 방문한다는 것은
혼인을 의미하는 것이고 아니면 처자의 행실이 바르지 못함을 뜻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모르겠지만 그 후로 편지도 방문도 끊겼다.
다른 한명은 남자 동기다.
옆에서 그 마음을 알아채 두루뭉술한 만남을 주선해 주었고
나와 마주 앉은 그 사람은 손에 든 커피 잔이 덜덜 떨려 옷에 흘리기도 했다.
결혼할 생각이 없었기에 괜찮다 생각하면도 그냥 보내 버린 사람이다.
십년도 훨씬 더 지나 마주쳤는데 아직도 나를 보는 눈은 아련해 보였다.
또 다른 사람은 그냥 무식한 방법으로 내가 좋다고 떠들며 다녀
직장에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끈질긴 전화가 어떤 이유로 해서 멈췄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아 또 있구나.
카리스마로 꼼짝 못하게 얽어매고는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더니
어느 순간 어떻게 헤어졌는지 알지도 못한 사이 끝나고 말았다.
이 사람은 파워가 있는 기관의 공채시험에 합격해놓고 내게 프러포즈를 했다.
우리 집 형편이 결혼 할 여지가 없어 사실대로 이야기 했더니 떠났다.
쓰고 보니 내가 카사노바 같다.
모두 거절만 하였고 남의 마음만 아프게 하였다.
모두 배우자로서는 괜찮은 편에 속했던 사람들이었고 성실하고 착했다.
곁에서 그 과정을 다 지켜 본 동기는 내가 왜 모두 거절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 중 누구하고 혼인해도 다 괜찮았는데 하면서
왜 그랬을까.
나도 궁금하여 여러 가지로 생각해봤으나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한 사람을 너무 오랫동안 짝사랑했기 때문에 남은 자리가 없어서였을까.
삼십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한편에 흔적인지 자리인지 모를 의미로 자리한 사람.
왜 이제 와서 스쳐간 남자들이 떠오르는지
이것도 간음에 해당되나 싶어 두리번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