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왜 갑자기 많아졌을까

사춘기 2006. 2. 10. 15:32

소파에 앉아 발목에 전기 찜질기계를 돌리고 토지를 읽는다.

다리를 높이 올려야 하니까(그래야 부기가 빠진다고 한다) 자세가 영 시원찮다.

등이 아파 기지개를 펴고 눈을 올리니

형이 술에 취한 동생을 업고 아버지가 곁에 같이 터벅터벅 걷는 장면이 나온다.


대사도 없고 얼굴도 클로즈업이 안 되어 표정이 보이지도 않지만

화면 가득 느껴지는 뭉클함에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엄마도 무섭고 아버지는 더 무서워 그저 멀리 달아나기만 했던 우리 형제들

한번쯤 저런 장면이 우리들에게도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모든 게 무디다.

공주병 왕자병에만 민감하고 세상 모든 거에는 무디다.

그래서인지 살면서 부럽다는 생각보다 이거 빨리 해야지 하며 살았다.

남이 가진 게 부러워서 갖고 싶다는 건 예쁜 옷 입은 정도랄까.

참 단세포적인 사고를 지녔다.

그저 주어진 일을 해야 할 일로 알고 그 일만 하며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생각이 있었던 건지 없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부러운 장면이 참 많아졌다.

자식이 많은 것도 부럽고

언니가 있는 것도 부럽고

아버지와 술 한 잔 마시는 것도 부럽고

엄마가 다정하게 안아주는 것도 부럽고

집에 들어가면 아들이 엄마 하고 안기는 것도 부럽고

잠자는 아내를 들여다보는 남편도 부럽고

아픈 데 없냐고 전화하는 시어머니도 부럽고

남편이 끓여주는 김치찌개 먹는 아내나 아들도 부럽고

나 어딘데 나와 술 한 잔 하자 불러내는 친구도 부럽고

힘들 때 어깨를 내 주는 남자도 부럽고

차 한 잔 하자며 손을 끄는 남자도 부럽고

온 식구가 같이 앉아 밥을 먹는 것도 부럽고


부러운 것이 너무 많아 많이 운다.

왜 이렇게 부러운 것들이 갑자기 많아졌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