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이윽고 겨울이 지나면 야생 오리들은 잊지 않고 날아왔던 곳을 향해 날아간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도 날아가지 않고 남아 있는 오리들이 있다 때로 나는 내가 날아가지 않고 남아 있는, 손쉽게 길들여진 집오리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선영- +++++++++++++++++++++++++++++++++++++++++++++++++++++++++ 휴가라고 집에 있으니 보는 것은 텔레비전이고 듣는 것 역시 텔레비전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뿐이다. 어제는 여성의 날이라고 여성여성 하며 종일 텔레비전은 말한다. 가장 많은 것이 육아문제에 대해서다. 나는 자식이 아들 하나다. 정상적이었다면 셋이어야 하지만 아들 하나 뿐이다. 변명이라면 변명이고 핑계라면 핑계지만 더 나아 키운다는 것이 자신 없었다. 1989년 초에 결혼하여 그 해가 가기 직전에 아들을 낳았다. 임신에 대한 기쁨도 출산에 대한 어떤 느낌도 없이 육아에 대한 고민이 먼저 다가왔다. 출산휴가 60일은 몸을 추스리기도 전에 지나갔다. 아들은 내 손을 떠나 외할머니 품으로 갔다. 둘째를 가지려할 때 여동생이 아들을 출산하여 역시 외할머니인 엄마에게 데리고 왔다. 시어머니에게 맡기기 위해 처음부터 같이 살았던 동생은 시어머니가 손자를 봐 줄 수 없다고 하여 해가지고 간 혼수마저 그대로 두고 맨 몸으로 나와 엄마에게 맡겼다. 사장 어른은 가지고 가라 하셨지만 가지고 나오면 사야 하니까 둘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두 살 터울의 외손자를 키우셨다. 적지 않은 연세여서 힘드셨을 텐데도 직장과 살림을 병행하며 사는 딸들의 고생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여자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두 외손자를 맡아 주셨다. 아들과 이종이 네 살 두 살이던 해 실수로 임신을 하였다. 어린이집도 귀한 시절 사람을 쓰자니 경제적으로 부쳤다. 엄마에게 또 맡기기에는 염치가 없었다. 고심끝에 우리는 병원으로 갔다. 마취가 깨고 나는 오열을 토하며 병실을 나섰다. 2년 후 어린이집이 있는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하고 또 실수로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미 임신과 출산을 감내하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남편은 장미를 한다발 나에게 안겼다. 문제가 생겼다. 어린이집은 영아를 맡아 주지 않았다. 엄마는 손자 셋(오빠네 딸 외손자 둘)을 키우시느라 노동력을 상실하셨다. 육아휴직은 없던 시절 갈 곳은 시어머니 뿐이었다. 시댁을 다녀 온 남편은 내 손을 잡고 병원으로 갔다. 우리는 지금도 그 아이를 아쉬워한다. 직장이 뭐 대수냐고 나오면 다 크게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남의 일이기 때문에 쉽게 말하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육아휴직을 다녀와도 잘리거나 하는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남자들의 눈총과 빈정거림만 소화하면 된다. 그럼에도 직원들은 쉽게 육아휴직 신청을 하지 못한다. 남자직원 중에는 자신이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싶은데 하는 사람도 있다. 새 언니만 해도 출산휴가를 3개월 이상 법적으로 보장하는 직장에 다녔어도 정작휴가는 2개월만 신청했다. 3개월이 넘게 되면 그 자리에 발령자가 오게 되고 출근하면 갈 자리가 없어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라에서 출산장려 정책을 편다고 법석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출산과 육아의 고통을 모르는 남자들이 짜는 정책이어서 말도 안되는 내용들만 난무하는 것 같다. 여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고 말로만 정책을 짜고 있는 것 같다. 여자들은 아기들을 마음놓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을 원한다. 엄마와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어린이집이 아니라 엄마가 출근하면서 맡기고 회식하고도 데려갈 수 있으며 그런 어린이집이 내가 사는 주변에 있기를 원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출산휴가가 결코 집에서 푹 쉬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남자들은 자신의 부인들이 아기를 낳고 몸조리 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정작 직장 동료에게는 잘 쉬다가 나왔느냐고 인사한다. 몸은 좀 괜찮냐 고가 아니라. 우리나라 인구가 늘어나려면 둘째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부모는 둘인데 자식이 하나면 인구는 자연히 줄 수 밖에 없다. 사교육비 때문에 하지만 그것은 셋째였을 때 이야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둘은 낳아야 한다고 한다. 하나는 주저없이 낳지만 둘째는 계산을 해야 한다. 둘까지 계산없이 낳을 수 있다면 인구는 줄어들지 않는다. 자식을 마음 놓고 나아 기를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면 장려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하여도 둘째나 셋째를 낳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첫째와 둘째 터울이 점점 길어지고 있음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둘째를 낳는데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면 누가 낳겠는가. 들째를 마음 놓고 낳을 수 없다면 그 어떠한 출산장려 정책도 실패한다. 여자가 집에서 살림하면 되지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결혼조건에 좋은 직장이 포함되는 요즘에 둘이서 벌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어진 세상이다. 남자들은 여자가 돈도 잘 벌기만 원하지 자신의 아이가 잘 키워지기는 원하지 않는 것 같다. 그 문제를 여자들의 문제로만 한정시키려 하니까 말이다. 하기야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키워내는 아내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많이 아파 고생하는 것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없어진 자식들에 대한 죄과라고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 하는 이 통증은 그 애들에 대한 나의 업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