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오늘 버스에서 생긴 일들

사춘기 2019. 4. 27. 15:16

병원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열살 정도 여자아이가 앉으라고 일어난다.

어른들은 어린이가 양보하는 좌석은 마음이 불편해서 앉지 못한다고 말하자 다시 앉는다.

버스는 노선을 따라 움직인다.


잠시 졸고 있는데 버스기사의 음성이 들려 눈을 떴다.

휠체어를 탄 내 또래 여자가 버스를 타려고 다시 정차를 요구하자 난색을 표하였다.

버스는 요구대로 후진하고 직진하며 휠체어가 오르기 쉽게 정차했다.

휠체어좌석에 앉았던 두 사람이 마지 못해 일어났으며 의자를 접어주지 않고 서 있는 사람들에게

도와주지 않는고 보고만 있냐는 여자의 날카로운 음성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저런 것들 때문에 장애인들이 욕을 먹는다면서 정류장 의자에 앉아 열변을 토하는 나이 든 남자.

그 남자는 차를 탈 수 있게 도와달라는 요청에도 보고만 있던 사람인데 말은 듣기 거북할 정도로 야멸찼다.

우여곡절 끝에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언제 승차했는지 180cm 정도 되어 보이는 키지만 골격은 내 몸 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여자가 서 있다.

키가 작아도 작은 체격이라 할 수 있는 골격을 키 큰 여자가 가졌다.

모델일까?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발을 움직이다가 휠체어에 살짝 닿았다.

순간 날카로운 음색이 날아온다.

지저분한 신발을 왜 가방에 대세요? 

비장애인은 빨래를 쉽게 하지만 비장애인들은 빨래하기 얼마나 힘든데요. 

내가 뭐라고 대응할지 몰라 당황하는 사이 같은 말이 날카롭게 다시 날아온다.

당황하는 사이 고의로 그런것 같지 않은데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버스는 여전히 사람들을 태우고 노선을 따라 움직인다.

버스기사는 어디에서 하차 하냐고 묻고 여자는 답한다.


아까 내게 좌석을 양보했던 아이가 내리려 하는 기색이 보였다.

통로 건너 옆 좌석에 젊은 여자와 딸로 보이는 일행을 향해 간다.

아!

이 아이는 엄마 곁으로 가기 위해 옆좌석이 비자 앉으려 했는데 내가 묻자 양보한 거라고 했구나.

그럼에도 나는 그 아이가 예뻤다.

난 그 나이에 그 정도의 자연스러운 사고능력을 갖지 못했다.

버스는 여전히 노선을 따라 움직인다.

휠체어를 탄 여자는 내리려 했던 정류장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내려야 한다며 내려달라 한다.

역시 버스정류장에 진입했는데.

이 사람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장애인을 쉽게 알아보고 도와주게 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

아니면 많은 상처로 인해 가시를 세우거나.

자신 때문에 접혔던 의자를 정상으로 만들려 한다.

우리가 할테니 그냥 내리라고 해도 내리지 않는다.

버스 기사가 정리하러 오자 내린다.

여자는 예민했고 목소리는 하이톤으로 날카로웠으며 내용은 비장애인의 마음을 열기 힘들었다.

버스는 종점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병원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접수시간이 간당간당하다.

졸음이 달아난다.

다행히 접수시간 종료를 앞두고 도착했다.

만약 접수하지 못하고 1시간여를 걸리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면

아마 나도 투덜거렸을지 모른다.

장애인들에게 나름 애틋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몸으로 겪은 것은 다른 종류였나보다.

오늘 내가 탄 버스에서는 짧은 시간에 참 많은 일이 생겼고 많은 것을 봤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

으뜸상을 준다면 당연하게 버스 기사다.

정류장을 살짝 넘어 정차한 차를 다시 후진하여 장애인을 태우고 좌석정리도 도왔다.

내리는 정류장을 말하지 않자 먼저 묻는데도 짜증이 묻지 않은 말투다.

이 모든 과정에서 몸으로 하는 언어는 과하지 않는 배려와 친절이 묻어있다.

진정한 친절이 이것이 아닐까.

직장생활 내내 친절도를 체크 당하고 교육하면서 한번도 해보지 못한 점수의 친절이다.

친절한 기사를 칭찬하기 위해 버스번호와 기사 이름을 촬영했는데 벌써 잊었나보다.

직장인에게 이러한 칭찬은 상사로부터 모범이라며 남들 앞에 서게 하는 종류인데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