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 4개국 여행-크로아티아 스플리트 1
부드바에서 두브로브닉으로 돌아와 호텔에서 일몰을 구경하고 숙박 후
아침 일찍 중부 달마시안의 황홀한 꽃 라는 스플리트로 출발했다.
두브로브닉에서 스플리트로 가는 길은 해안을 달리고 협곡을 넘고 크로아티아 자연을 다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풍광은 빼어났다.
스플리트에는 로마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퇴임 후 지내려고 궁과 함께 영묘도 함께 만들었으나, 재위시절 로마의 주신 쥬피터를 섬기고 기독교도들을 누구보다 가혹한 탄압했다고 한다.
그 이유로 중세에 황제의 영묘는 성당으로 바뀌었고 지금도 성당에서 예배를 본다고 한다.
궁은 권력과 재력과 지은 이들의 솜씨를 어디서나 감탄하며 볼 수 있었다.
숨은 슬픔과 권력의 덧없음도.
영묘(성당) 앞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스핑크스와 기둥이 있는데
궁 건축 당시 이미 1,700년 정도 된 기둥과 스핑크스라고 한다.
지금이 2015년이니 얼마나 오래된 기둥인가.(3,000년이 넘은 기둥이다)
그 기둥과 스핑크그는 로마의 권위가 당시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증명하는 것이다.
당시 꽃과 누나라는 프로로 인해 발칸반도에는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많았다.
가는 곳마다 , 가는 화장실마다, 가는 호텔마다 만나는 일행들을 또 만나게 되니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또 만나네요. 안녕하세요 인사를 할 정도였다.
단체여행객 뿐만 아니라 배낭여행을 친구들와 온 젊은이들도 많이 만났다.
인사도 없고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멀리서 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곳 스플리트는 꽃보다 누나가 전망대에 올랐고, 빨간구두를 샀다고(우리 집은 공중파만 있음)
일행들이 꼭 전망대와 빨간구두와 란제리를 판매하는 상점을 가야 한다고 가이드를 졸랐다.
일행들이 전망대에 올라가고 발목이 부실한 몇몇이 자유시간으로 시내를 돌아보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빨간 구두와 란제리 판매 상점 앞에서 사진도 찍고(나는 아니고)
비가 갠 날씨는 눈이 아리도록 투명한 햇살과 눈부신 바다를 제공해줬다.
더불어 옛 도시와 함께
스플리트 관광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점심을 먼저 먹고 시작했다.
메뉴는 이탈리아 전통음식인 라쟈냐와 화덕에 구운 빵
라쟈냐는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우리나라 남자들도 혼자서 다 먹는다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맛은 괜찮은 편이었으나 크기에 질려서인지 화덕에 구운 빵이 인기가 더 좋았다.
스플리트(인터넷에서 가져 옴)
옛 가지의 중심 부분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안에 자리잡고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305년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 313년 사망하기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거대한 이 궁전(295~305 세움)에는 바다를 향하는 두께 2m, 높이 22m의 벽과 북쪽을 향하는 높이 15m의 벽이 있다. 원래 이 궁전에는 4개의 성문과 16개의 탑이 있었는데, 그중 3개의 탑만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 궁전은 로마 시대의 궁전 건축물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잘 보존된 것이며, 그리스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반씩 섞인 과도기적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이 궁전의 평면은 로마 시대의 야영지처럼 직4각형이고 4개의 길이 중앙에서 만나도록 설계되었으며, 길마다 거대한 아케이드가 늘어서 있다. 북쪽 끝에는 다수의 노예·하인·수비대를 위한 숙소가 있었으며 남쪽 끝에는 웅장한 아치형의 황실 거처와 집무실들이 있었다. 653년 이 시 최초의 주교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영묘를 대성당으로 바꾸었는데 이 성당은 훌륭한 프레스코, 대리석으로 만든 설교단, 로마네스크 양식의 조각물로 유명하다. 주피터 신전은 오래전에 세례당으로 바뀌었으며, 14, 15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종탑이 추가로 건설되었다. 이 궁전이 세워진 이래로 계속해서 사람들이 거주해왔으며, 로마 시대뿐만 아니라 중세·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건축물과 장식물들이 있다. 크로아티아 당국은 로마 시대의 유적들을 더 발굴하고 중세 초기의 유물들을 밝혀내기 위해서, 절충적인 양식의 건축물들과 현대적인 특색들을 보존하기 위해 힘써왔다. 지금도 주민들은 이 궁전을 박물관으로서가 아니라 시의 중심으로 여긴다. 대성당과 세례당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기둥이 늘어선 중정(中庭)에는 카페가 있다. 로마 시대 양식의 아케이드에는 가게들이 즐비하며 궁전의 동문 바로 바깥쪽에는 이 시의 주요시장이 있다. 그러므로 관광객들은 시민들의 빨랫줄 아래를 거닐면서 로마 시대 및 그 이후 모든 시대의 건축유적을 보게 된다. 박물관으로는 크로아티아의 조각가인 이반 메슈트로비치의 작품들을 전문적으로 소장한 박물관과 무기 박물관이 있다. 베네치아풍의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시청사는 민속학 박물관으로 쓰인다. 주(主)광장의 서쪽과 남쪽에는 중세에 옛 시가지가 확대되면서 생긴, 미로처럼 얽힌 좁은 가로망이 있다. 벨프리 교회의 성모 마리아 종각(1100경)은 달마치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812년부터 이 도시는 비잔틴 제국의 주요도시로 발전했다. 베네치아(998)와 크로아티아(1069)에게 잠시 점령당한 후 1105년에 헝가리-크로아티아의 명목상의 종주권을 인정했으며, 경쟁관계에 있는 트로기르와 가끔 싸웠다. 1420~1797년에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고 1797~1918년에는 오스트리아에 의해 통치되었는데, 오스트리아의 통치기간중 1808~13년에는 잠시 프랑스에 넘어가기도 했다. 1918년 유고슬라비아에 합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