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주제없는 이야기

사춘기 2015. 1. 30. 12:02

어제 모처럼 사거리 대각선 건너에 사는 막내네 집에 다녀왔다.

베란다에 서면 서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 가까운 거리지만

얼굴을 마주 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서로 살기 바쁘다는 만인의 공통적인 이유로

 

난 원액(발효액 이라고도) 만드는데 빠지고

동생은 커피에 빠지고

만든 원액과 원액을 건지고 남은 건더기에 부어 만든 술을 가지고 찾아갔다.

집에 사람이 없는 것은 동생이나 나나 마찬가지

소핑카트를 보더니 난감해 한다.

 

동생이 만든 커피를 마시며 3D기능을 가진 텔레비전을 본다.

말없이 텔레비전만 보던 동생이(우리 형제는 인사를 나누고 나면 할 말이 없어진다.)

덕유산 이야기를 꺼낸다.

 

텔레비젼에서 덕유산 설경을 보내주는데

향적봉과 케이블카를 보고 엄마 생각이 났다는

그리고 내게 고맙다고 또 말한다.

 

꽃보다 아름답다는 초록이 한창인 5월에

엄마랑 동생 나 셋이서 덕유산 케이블카를 타고 향적봉을 다녀왔다.

내려오는 길에 방금 덕유산에 채취한 산나물비빔밥을 먹고

식당 주인이 챙겨주는 산나물 가져와 맛있게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 날 덕유산 초록은 모란이나 장미보다 눈부셨다.

초파일을 앞 둔 사찰의 연등도 

 

자기가 미혼이어서 쉽게 다닐 수 있기는 했지만

큰누나인 내가 숙소를 제공하여 쉽게 출발할 수 있었다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 잘해 드린 건 그것 뿐이었다고

그 생각엔 나도 동감이다.

 

1년에 4~5번은 엄마랑 동생이랑 콘도에 머물며 전국 여행을 다녔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비록 제주도지만 비행기도 태워드렸고

핑계김에 우리도 누렸고

효 라는 단어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제 우리집에서 동생네 집으로 숙소를 옮긴 원액은

청매실, 황매실, 포도식초, 황매실주, 마가목열매주

술마시는 걸 싫어하면서도 술은 잘 주네.

동생이 웃으며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