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선서
야근을 하고 있는데 직원의 전화가 온다.
전근 가신 분하고 한 잔 하려는데 나오라고
대충 마무리를 하고 나섰다.
이런 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하고
어떤 여자가 나를 좋아하는데 어떡하느냐며
실없이 웃기도 하고
나 있을 때는 촌스럽더니 언제 이렇게 변했냐며
바람 났어?
하며 하하하 웃기도 한다.
난 여자들이 왜 그렇게들 사귀자고 하는지 모르겠어.
한 잔 들어가자 전근 가신 전의 상사가 말을 한다.
남자로서 수줍게 우쭐대는 모습이
쉰이 훨씬 넘었음에도 젊은이 못지 않은 모습이다.
그런데 난 있잖아 여자랑 그럴라면 병에 걸릴까봐 무서워서 못하겠어.
난 괜찮은데 울 마누라에게 옮기면 어떻게 해.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하자고 해.
우습지?
한순간만 넘기면 욕정은 사라지는거야.
그러면서 넘기는거지 뭐.
모두 같이 웃었다.
슬기로운 대답인 거 같기도 하고
미련이 남은 듯한 대답인 거 같기도 하고
둘 다일지도 므르겠다.
있잖아~~
**야
난 그래.
종이로 쓴 각서보다 여러 사람들이 보고 듣는데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산다고 우렁차게 대답했는데
세상에서 그보다 큰 약속이 어디있나.
죽어도 그 약속은 깨지 못하겠드라.
오천억이 넘는 재산을 가진 여자가 사귀자고 하는데
그러면 나 직장 안다녀도 되잖아
그래도 그 대답이 무서워서 못하겠어
장부가 여자와 약속을 했으면 죽을 때까지 지켜야지
안그래?
............................
가슴이 찡하게 울렸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한 말이지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남자의 정을 그대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도장찍고 공증받은 종이문서보다
아는 이들을 모셔 놓고 큰 소리로 대답한 약속은 절대로 깨지 못하겠다는
쉰 중반의 잘 생긴 남자가 하는 말
그날 밤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난 어떤 여자가 몹시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