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혼인 선서

사춘기 2008. 8. 7. 22:00

야근을 하고 있는데 직원의 전화가 온다.

전근 가신 분하고 한 잔 하려는데 나오라고

대충 마무리를 하고 나섰다.

 

이런 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하고

어떤 여자가 나를 좋아하는데 어떡하느냐며

실없이 웃기도 하고

나 있을 때는 촌스럽더니 언제 이렇게 변했냐며

바람 났어?

하며 하하하 웃기도 한다.

 

난 여자들이 왜 그렇게들 사귀자고 하는지 모르겠어.

한 잔 들어가자 전근 가신 전의 상사가 말을 한다.

남자로서 수줍게 우쭐대는 모습이

쉰이 훨씬 넘었음에도 젊은이 못지 않은 모습이다.

 

그런데 난 있잖아 여자랑 그럴라면 병에 걸릴까봐 무서워서 못하겠어.

난 괜찮은데 울 마누라에게 옮기면 어떻게 해.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하자고 해.

우습지?

한순간만 넘기면 욕정은 사라지는거야.

그러면서 넘기는거지 뭐.

 

모두 같이 웃었다.

슬기로운 대답인 거 같기도 하고

미련이 남은 듯한 대답인 거 같기도 하고

둘 다일지도 므르겠다.

 

있잖아~~

**야

난 그래.

종이로 쓴 각서보다 여러 사람들이 보고 듣는데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산다고 우렁차게 대답했는데

세상에서 그보다 큰 약속이 어디있나.

죽어도 그 약속은 깨지 못하겠드라.

오천억이 넘는 재산을 가진 여자가 사귀자고 하는데

그러면 나 직장 안다녀도 되잖아

그래도 그 대답이 무서워서 못하겠어

장부가 여자와 약속을 했으면 죽을 때까지 지켜야지

안그래?

............................

 

가슴이 찡하게 울렸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한 말이지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남자의 정을 그대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도장찍고 공증받은 종이문서보다

아는 이들을 모셔 놓고 큰 소리로 대답한 약속은 절대로 깨지 못하겠다는

쉰 중반의 잘 생긴 남자가 하는 말

 

그날 밤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난 어떤 여자가 몹시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