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모름

사춘기 2008. 7. 5. 15:48

원하지 않아도 직원들은 나를 안쓰럽게 보고

또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진심어린 말과 형식적인 말이 공존한다.

내가 상처 받을까봐 바라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사회생활

좁게 표현하면 직장생활이 맞지 않는 사람인 거 같다.

관리 좀 하지

밥 좀 같이 먹지

하는 말들이 위로의 말인지 비아냥의 말인지 이제는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내 기준의 자는 이미 흔들려 자로서 기능을 잃어버렸다.

 

바람막이로서 원하지 않은 부서에 임용되기 위해 채용되었고

중간에 또 바람막이로 그 부서에서 2년여를 근무했다.

시기와 질시를 받아내야 하는 부서

그럼에도 선망의 부서

한번은 근무함으로서 직장의 어떤 의미로든지 알맹이를 맛 볼 수 있는 부서

두번 째 근무하면서 난 모든 것을 잃었다.

 

남편의 말대로

우리는 비비지도 못하고

때울 돈도 없고

밀어 주는 백도 없으니

몸으로 열심히 근무하자.

 

그래서 우리 집에선 흔히 말하는 그저 그런 눈 먼 돈 한 닢 들여오지 않았다.

남편도 나도 그런 돈은 원하지 않았고 할 줄도 몰랐다.

무엇보다 그런 돈을 받으면 큰 일 나는 줄만 알고 살았다.

상사와 술 한 잔은 커녕 저녁 한 끼 먹지 않았고

~님 하면서 어깨 한 번 털어주지 않았다.

 

내 기준에는 그게 당연한 거였다.

퇴근 후에 집에 가기 바빴고 다른 직원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혼자 근무하는 부서에 있다보니 동료와 어울리지 못해

온갖 오해는 다 받아도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

해명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알아주리라 믿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나 상대적인 기준으로나

서른 살인 우리 와이프가 더 때가 묻었다고 말하는 직원

사람들은 순수하게 세상을 사는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점점 나는 따돌림 당하고 있었고 그를 느꼈음에도 나는 애써 무시했다.

 

결과는

고립이다.

적당히 때를 묻히려 하는 지금 오히려 사람들이 다가온다.

 

서글프다.

무엇이 정답이고 무엇이 오답인가.

난 열심히 일했고 조회석에서 가르쳐 준대로 살았는데

줄 간 을 읽지 못했다고 이상하다고 한다.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고

주어진 여건에서 남에게 미루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며

법에서 어긋나는 일처리는 하지 않으려 하는 내가 부담스러웠을까.

그럼에도 사람이 모자라니 또 내게 1인 3역을 맡긴다.

나는 또 말없이 화장실도 가지 않고 일을 할 것이다.

 

교과서대로 살았는데

잘 못 살았음을 시인해야 하는 심정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 없으니 들어가도 된다는 영국인과

잔디밭에 들어 가라는 말이 없으니 들어가면 안된다는 독일인

 

어느 쪽으로 일을 해도 감사하는 이에 따라 시말서를 쓰고 안 쓰는 우리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