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보랏빛 달빛

사춘기 2005. 1. 27. 00:15

꿈에

 

                 -양수창-

 

살아가면서 만난
꿈, 작은 꿈
하나라도
버리지 않고
홀대(忽待)하지 않고.
닦고
달래고
꿰매고
기름치며
사랑을 떠 먹이며
모아서
모아서
진열대에 하나씩
얹어둔 꿈.
내 인생(人生)
진열대에 가득
가득 채워진 꿈.
아이 엠 에프라고 부르는
괴상한 놈이 나타나서
사람들의 꿈,
그 꿈을 야금야금
닥치는대로
잡아먹는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스스로
꿈을 그 놈 앞에
진상(進上)하고
낙심하고
절망하며 살아가지만,
내 인생(人生) 진열대에
지금도 번쩍이는 꿈,
그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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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는 달빛이 가득하다.

넘치는 달빛 위로

달빛은 쏟아져 내린다.

가로등 불빛이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달밤에 체조하러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갔다.

고등학생 셋이서 줄넘기도 하고 농구도 한다.

밤 열한시가 넘은 시각

다 늙은 여자가 고등학생 셋이 무섭다.

다른 여자가 우리 아들을 밤에 보고 무섭다고 할까

아들에게 밤에는 나가지 말라고 해야지

 

엄마네 집이 나갔다.

지난해 오뉴월에 내 놓은 집이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싼 맛에 샀다.

그 사람이 나중에 우리처럼 팔 때 힘들지라도

난 집이 팔려서 좋다.

손해보고 판 집이다.

 

아들이 그 집에서 성장했다.

우리집보다 엄마네 집인 그 집에서

더 많이 먹고 잤다.

아들을 내다 판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언젠가 아들이 그 집을 찾아오겠지

내가 자란 집이라고

내가 내가 자란 시청 뒷골목을 찾아 가듯이

 

집이 팔려 후련하면서도

새로 산 사람이 안쓰럽다.

가진 게 없으니 이사다니기 싫어서 산 것 같다.

사는데에 나무랄데 없는 집이지만

파는데는 1층이어서 문제가 있다.

없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힘들다.

 

섣달 보름달을 살짝 넘긴 달이

마지막 빛을 쏟아낸다.

겨울의 달빛은 가슴을 싸하게 한다.

보랏빛처럼 처연하기조차 하다.

오늘밤이 보랏빛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