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묵 상
여름이 가을로 와
낙엽의 몸짓으로 흩어져 가도
까마득한 세월
심장에서 떨어져 간 봄을 찾아
길을 떠난 보헤미안은 돌아오지 않았다
바람이 불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어가는 사막의 길처럼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길
처음부터 잘못 든 길을 헤맨 오류로
덧난 상처를 향수처럼 끌어안고
목발은 오늘도
이우는 가을 해를 노래하고 있으리
한 生이 무거우면
다른 한 生이 가벼운 게 세상의 몸짓
내 몸을 밟고 지나간
아득한 시간만큼이나 바스러진 기억들
어느 한 순간을 주워들고 그가 온다면
나는 덧문을 걸어 닫고
그와 함께 곱게 저물어 가리라
낙화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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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관악산에 다녀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쉬운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아주 커다란 모험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대로 잠이 들어 아침에 일어났다.
팔 다리는 여전히 아우성이지만
견딜만한 걸 보니 허리가 그동안 많이 좋아졌나보다
어제는 허벅지 근육이 파열된 줄 알 만큼
통증이 무척 심했다.
어제의 등산을 위해서
등산화도 등산양말도 새로 샀다.
배낭은 아직 이지만 어제의 실험이
비교적 양호했다는 나름대로 평가를 내렸다.
같이 등산을 간 이들은
인터넷카페 회원들이다.
10여명 모였는데 내가 뒤에 처져 헉헉 거려도
찡그리지 않고 기다려주는 그 마음들이
편안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있으려니
남녀가 뒤섞인 우리 일행을 보고
이상한 말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회원들이 적당한 선을
아주 잘 지키고 있었다.
남과 여가 같이 있으면
모두 같은 상상을 하는 것은
우리사회가 그만큼 문제가 있다는 것일 게다.
남편과 함께 드라이브 가면
우리가 어떤 사이로 보일까
하면서 서로를 쳐다보며 웃는 것은
통과의례적인 행사다.
산에서 내려와 깔끔하게 헤어졌다.
나는 처음이라서 어색했지만
다들 동창들처럼 친숙하게 어울렸다.
나도 같이 어울리려 노력했다.
내 성격으로 봐서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봤다면
입을 벌리며 놀라 손가락질 했을 것이다.
어제의 산행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적어도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듯 싶다.
나도 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음식도 척척
교제도 척척
남편들과 아내들의 허락을 받아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
세상에는 뉴스에서만 보이는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