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회의

사춘기 2007. 4. 30. 19:47

직장에서 내 위치는 뜨거운 감자다.

가장 좋은 해결방법은 내가 사표를 제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어디가서 이만한 급여를 받으며 일할 수 있단 말인가.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을 위해 동생들은

내가 직장에 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내가 집에 있다고 해서 아들이 달라질 게 뭐 있느냐며 버틴다.

말 그대로 버틴다.

 

나는 한직에도 있었고 노른자위에도 있었다.

노른자위에 있을 때에는

바늘로 찔러도 피가 나지 않을 정도 라는 표현을 들었다.

(그 배경에는 상부기관의 압력도 캡틴의 부탁도 들어주지 않은 사연이 있다.)

그 만큼 원리원칙을 고수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능력껏

 

그것은 호평과 악평을 동시에 받았다.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비단 직장생활 뿐 아니었다.

내 삶 자체가 원리원칙이었고

엇나가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삶이었다.

재미없는 사람의 대명사가 나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삶이 과연 옳았는가에 대해 회의에 빠져있다.

내가 곤경에 처하자 모든 사람들이 나를 외면했다.

원리원칙이라는 것이다.

원칙을 잘 아는 사람이 라는 말로 시작한다.

 

내가 처한 곤경이 원리원칙과는 상관없는

어떤 사람의 말 그대로 밥 한 끼 사지 그랬어(누가 말해줬다)

라는 표현이 적절한 다분히 개인적인 감정이 실린 곤경이다.

물론 나보다 상당히 높은 사람이 가진 감정이다.

 

지고 싶지 않다.

편법도 쓰기 싫다.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자존심이 무척 상한다.

장기전이다.

 

누가 봐도 정당하지 못한 처사이지만

그렇다고 말 해주는 사람도 없다.

 

내 원리원칙주의가 불러 온 화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내 삶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정당하게 살았다고 생각하고

명예롭게 생각했던 내 생활들을 회의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변화를 주지는 못하고 마음만 아픈 상태다.

 

이제는 집이는 금방 부자되겠네.

그 자리가 참 좋은 자리라던데

하는 부러움의 말을 부모님께서 들으셨다지만

나나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다.

 

내가 갖는 회의가

정당한 것인지

정당하지 못한 것인지

이제는 그조차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