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제 일 순위

사춘기 2006. 12. 25. 13:01

치카치카 이를 닦으며 거울을 본다.

하얀 제법 하얀 얼굴이 나를 본다.

심술궂어 보이기도 하지만 하얀 낯빛이 살갑다.

 

녹즙을 먹기 시작한 지 1년여

기미가 다 빠졌다고 할 수 있겠다.

예뻐지면 뭐하나.

마음이 여유가 없는 걸.

 

겨울 방학식이 있던 날

아들은 여자친구의 초대를 받았다고 들 떠 나갔다.

가방에는 포장한 선물상자를 넣고서.

 

여자친구 줄 선물 사게 돈 좀 달라는 아들

별거 아니겠지 하며 줬는데

삼만원이 넘는 목도리를 사서 돈을 들여 포장을 했다.

이그 이 넘

엄마한테는 생일 선물로 심천원짜리 빵도 안 사주면서...

 

서운했다.

그냥 서운한 정도가 아니라 몹시 서운했다.

돈을 벌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선물은 무슨

여자친구한테는 선물을 하면서 엄마인 나에게는?

하며 서운해 했다.

 

며느리가 있었다면 아마 그 서운함을 며느리탓이라고 했을 것이다.

아들이 잘못했는데 욕은 며느리가 먹는다.

무슨 이치인가.

 

내게 있어서 일순위는 남편이다.

핸드폰에도 1번은 아들이 아니라 남편이다.

엄마도 아니고 형제도 아니고 남편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들에게 1번을 나에게 줄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고 있다.

무슨 횡포인가.

 

아들에게 있어서 일번은 여자친구다,

나중에는 아내일 거고 자식일 거다.

엄마인 나는 삼순위로도 만족해야 한다.

알면서 왜 서운할까.

 

일순위가 누구인지 인식하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한다면

장차 아들이 자기 식구들과 살 때

삐걱이는 소리는 아주 커다란 소음이 될 것이다.

 

아들은 그 선물을 전하지 못해 허탈한지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내게 전화했다.

아들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남는다, 

'기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교에서는 모르지  (0) 2007.01.15
내가 좋아한 사람  (0) 2007.01.07
쓸데없는 생각들 10  (0) 2006.12.09
쓸데없는 생각들 9  (0) 2006.12.07
쓸데없는 생각들 8  (0) 2006.12.01